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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영월의 13월, 얼어붙은 강물 위로 흐른 ‘수습(收拾)의 미학’
-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소환한 불멸의 의리와 인간의 도리 -
기사입력: 2026/03/26 [10:02] ⓒ 국제언론인클럽(GJCNEWS)
한동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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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열 논설위원 칼럼 ]

[제1편] 영월의 13월, 얼어붙은 강물 위로 흐른 ‘수습(收拾)의 미학’

 

1. 존재하지 않는 시간, '영월의 13월'을 선포하며

세상의 달력은 12월의 끝자락에서 멈추고 다시 1월의 희망을 준비한다. 숫자로 치환된 시간 속에서 인간은 망각을 통해 고통을 잊고 새로운 내일을 꿈꾼다. 그러나 강원도 영월에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오직 인간의 뜨거운 심장으로만 기록된 신비로운 한 달이 더 존재한다. 필자는 그것을 ‘영월의 13월’이라 부르고 싶다. 1457년 겨울, 수양대군이라는 거대한 권력의 서슬 퍼런 칼날 아래 온 세상이 숨을 죽이고 꽁꽁 얼어붙었을 때, 영월만은 그 동토(凍土)를 뚫고 피어난 뜨거운 의리의 시간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비운의 왕 단종과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영월의 적막함을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청령포의 삼면을 휘감아 도는 서늘한 강물, 밤마다 울어대던 소나무 숲의 오열, 그리고 육육봉의 험준한 산세는 500년 전 그날의 비극을 생생히 증언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누가 왕을 죽였나’라는 과거의 추적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누가 끝까지 그 왕의 곁을 지켰으며, 버려진 존엄을 누가 수습했는가’라는 인간 본연의 도리에 관한 물음이다.

 

2. 권력이 금지한 도덕, 그리고 엄흥도의 선택

당시 세조의 어명은 단순한 형벌의 예고가 아니었다. “노산군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리라.” 이는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도덕성, 즉 죽은 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조차 권력의 이름으로 금지한 절망의 선포였다. 공포는 전염병보다 무서웠다. 천하의 문사들도, 평생 충성을 맹세했던 고위 관료들도 모두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 고개를 돌렸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멈춘 듯 보였다.

그때, 영월의 일개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동강의 차가운 물결 속에 버려진 어린 왕의 시신 앞에 섰다. 엄흥도에게도 지켜야 할 목숨 같은 세 아들이 있었고, 평온한 일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보았다. 강물에 떠도는 것은 한 나라의 왕이었던 소년의 육신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인 ‘신의’와 ‘도리’ 그 자체였음을 말이다. 그는 결단했다. “충의를 행하다 화를 당하는 것은 달게 받겠다(爲善被禍 吾所甘心).” 이 짧고도 강렬한 한마디는 12월의 끝에서 동사(凍死)할 뻔한 역사의 시계를 13월의 희망으로 돌려놓는 위대한 인문학적 선언이었다.

 

3. 수습(收拾)의 미학: 무너진 가치를 바로 세우는 힘

그는 세 아들과 함께 밤의 정적을 뚫고, 아무도 돌보지 않던 시신을 등에 업었다. 눈 덮인 동을지산의 가파른 비탈을 오르던 그의 거친 숨소리와 떨리는 발자국은 영월의 흙에 ‘의리’라는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새겼다. 세상은 그를 미쳤다고 했을지 모르나, 그는 12월의 공포를 이겨낸 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고결한 영토로 나아갔다.

필자는 여기서 ‘수습(收拾)’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수습은 단순히 흩어진 물건을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가치의 파편을 모아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창조적 복원이다. 엄흥도가 수습한 것은 단종의 유해만이 아니었다. 그는 권력에 의해 짓밟힌 ‘인간의 품격’을 수습했고, 공포에 질린 ‘시대의 양심’을 수습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지표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나, 정작 사람 사이의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정치는 증오를 생산하고, 경제적 불황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생존만을 도모하는 고립된 겨울을 지나고 있다. 기술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었으나, 타인의 고통을 수습하려는 노력은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영월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의 무너진 삶을, 혹은 우리 공동체의 깨어진 가치를 수습해 줄 ‘13월의 마음’을 품고 있는가? 영월의 13월은 바로 그 책임지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고결한 역사적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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