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열 논설위원 칼럼]
1. 침묵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투쟁
의리는 한 사람의 위대한 결단으로 시작되지만, 그 결단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헌신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암장한 뒤, 그는 가솔을 이끌고 정든 영월을 떠나 홀연히 사라졌다. 조정의 추적은 집요했고, 구족(九族)을 멸하겠다는 위협 속에 영월 관아의 수색은 잔인할 정도로 반복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인류 역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기적이 벌어진다. 1516년 우승지 신상의 보고로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무려 60년 동안 영월의 그 누구도 엄흥도의 행방이나 단종의 묘 위치를 발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입을 다문 행위가 아니다.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이웃이 그 치명적인 비밀을 공유하면서도 단 한 명의 배신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영월 사람들은 권력의 폭압보다 사람 사이의 신의를 더 무겁게 여겼다. 그들은 침묵이라는 가장 정적인 도구를 통해 거대한 ‘보이지 않는 요새’를 구축했다. 입을 닫음으로써 의로운 이웃을 구했고, 동시에 영월이라는 지역 공동체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2. 기술경영학으로 본 ‘신뢰의 경제학’
필자의 전공인 기술경영학적 관점에서 볼 때, 영월이 보여준 60년의 침묵은 현대 사회가 그토록 갈구하는 궁극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구성원 간의 신뢰와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신뢰가 두터운 공동체는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이 획기적으로 낮아진다. 서로를 감시하거나 의심할 필요가 없기에 에너지를 외부적 혁신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비밀을 팔아 사익을 챙기고, 가짜 뉴스로 상대를 공격하는 불신의 시대를 산다. 정보가 권력이 된 시대에 ‘침묵’은 경제적 손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월의 사례는 정반대의 진실을 말해준다. 가장 단단한 공동체는 ‘말이 많은 곳’이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 입을 닫을 줄 아는 곳’이다. 60년의 침묵은 영월이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 유일무이한 ‘의리의 고을’로 만든 가장 강력한 무형 자산이 되었다.
3. 영월의 흙이 품은 묵직한 신의(信義)
불신과 분열로 상처받은 이들이 영월을 찾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수려한 자연경관 때문이 아니다. 그 땅의 흙과 바람이 기억하고 있는 ‘변치 않는 의리’와 ‘60년의 고귀한 침묵’을 통해, 자신의 흐트러진 내면을 수습하고 싶기 때문이다. 장릉의 소나무들이 유독 굽어 있는 것은, 어쩌면 그 무거운 비밀을 함께 지키느라 고개를 숙였던 민초들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강원도민,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 가져야 할 자부심의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는 권력의 폭압에 맞서 사람 사이의 도리를 끝까지 수호해 낸 가장 단단한 정신적 자산이 있다. 이 ‘의리의 요새’는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 심리적 안정감과 통합의 실마리를 주는 거대한 인문학적 유산이다. 영월의 침묵은 결코 멈춰있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살아있는 잠언이다. 우리는 이제 이 고귀한 침묵의 역사를 현대적 가치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시대의 신뢰 인프라로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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