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열 논설위원 칼럼]
1. 500년을 이어온 '약속'의 데칼코마니
영월이 지켜온 의리의 역사는 박물관의 박제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면면히 흘러 500년을 건너뛰어 후손 산악인 엄홍길 대장에게로 이어졌다. 2005년, 전 세계를 감동시킨 히말라야 설산의 서사는 단순한 등반 기록이 아니었다. 에베레스트 ‘데드존’에 홀로 남겨진 동료 박무택 대원을 향해 남겼던 약속, “반드시 너를 찾으러 오겠다”는 그 절박한 한마디를 지키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명예와 목숨을 걸고 다시 산을 올랐다.
정상을 정복하여 국위를 선양하는 화려한 영광 대신, 얼어붙은 동료의 시신을 품에 안고 오열하며 설산을 내려오던 ‘휴먼 원정대’의 모습은 500년 전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업고 눈 덮인 산길을 헤치던 장면과 소름 돋을 정도로 겹친다. 시대와 장소, 도구는 달랐지만 그들을 움직인 본질적인 동력은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예의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 ‘수습(收拾)의 정신’이다. 목숨을 건 약속의 이행, 이 숭고함이야말로 영월과 강원도가 가진 진정한 ‘헤리티지(Heritage)’다.
2. 웰니스 산업의 핵심 재료: 역사적 서사와 치유
현대 사회에서 관광과 산업의 패러다임은 ‘소비’에서 ‘치유’로 이동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는 도구가 바로 웰니스(Wellness)다. 필자는 웰니스를 단순히 몸을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자존감과 상실된 인간성을 가치 있게 회복하는 ‘수습의 과정’이라 정의한다. 이런 맥락에서 영월의 엄흥도와 엄홍길로 이어지는 서사는 그 어떤 첨단 기술보다 강력한 산업적 재료다.
강원도 전역에 흩어진 감동적인 스토리들은 이제 ‘스토리텔링’을 넘어 ‘스토리두잉(Story-doing)’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방문객들이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치를 직접 체험하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받도록 설계해야 한다. 장릉의 숲길을 걸으며 엄흥도의 충절을 호흡하고, 히말라야의 정신을 잇는 ‘약속의 길’에서 나 자신과 타인을 향한 책임을 되새기는 체험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는다. 웰니스 산업의 본질은 결국 ‘인간성 회복’에 있기 때문이다.
3. 강원도의 새로운 전성기, 의리의 플랫폼 위에서
정치는 혼란스럽고 경제적 불확실성은 여전히 우리를 고단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13월의 비밀을 지켜낸 선조들의 위대한 침묵과,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킨 영웅들의 뜨거운 심장이 있다. 이것은 단순한 과거의 자부심이 아니라, 강원도의 미래를 열어갈 핵심 동력이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확보된 땅은 기업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혁신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강원도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국제뉴스와 같은 매체를 통해 세상 밖으로 활발히 소통될 때, 강원도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의 영혼을 수습하는 ‘의리와 치유의 고향’으로 거듭날 것이다. 영월의 13월은 이제 우리 모두의 미래를 밝히는 영원한 희망의 빛이다. 그 고결한 약속의 땅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으며, 강원도의 새로운 전성기를 설계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제 '수습의 DNA'를 통해 세상을 치유하는 거대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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